제주올레

마음이 급해서 올레19코스

준형아빠 2024. 2. 10. 01:27

2019년  11월  18일

 

제주에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요며칠 고민한 것은 18-1코스인 추자올레에 대한 것이었다.  급하게 하면 하루에 끈마칠 수도 있겠지만 추자도는 볼 것도 많고 경치가 좋아서 여유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내가 제주올레를 하면서 빼먹은 것은  18,  19코스 그리고 추자올레인 18-1코스다.  오늘 19코스를 가기 위해 조천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하고 조천만세동산에서 출발 스템프를 찍으려고 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동안 스탬프를 꾸준히 찍어오던 올레 패스포트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숙소에 놓고 왔나 싶어서 급하게 차를 돌려서 숙소로 돌아와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당황해서 울레센터에 전화를 해보니 패스포트가 없어도 블로그에 출발사진, 중간사진, 종점사진만 있으면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패스포트를 찾는 거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제 17코스를 하면서 종점에서 패스포트를 신경쓰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가뜩이나 차들이 자주 막히는 제주에서 속소로 갔다가 만덕정으로 다시 돌아가려니 시간도 많이 허비하게 되었다.  그래도 17코스 종점에 도착해보니 다행히도 누군가가 내 패스포트를 스템프 통 안에 넣어두었다.  고마운 일이다.  패스포트를 찾아서 다시 조천의 만세동산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11시가 다 되었다.

조천만세운동은 1919년 3월  조천지역의 스님, 해녀, 주민 등이 일제헤 대항하여 항일 독립을 주장하며 만세운동을 벌인 것을 계기로 도내 전지역으로 이런 운동이 확산되는 모체가 되는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공원이다.  

제주 어디를 가나 그렇지만 이곳에도 멋지고 오래된 팽나무를 볼 수 있었다.  

공원에는 왠 까마귀들이 이렇게 많은지 많은 까마귀들이 사람이 가까이 가면 일제히 날아오른다.

길은 공원 뒤쪽을 빠져나와서 바다쪽의 농로로 이어진다.

제주의 농촌 풍경은 다른 지역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첫째는 모든 밭이 돌담으로 둘러쌓여진 것이 다르고 둘째는 다른 곳과는 달리 반듯한 모양으로 정리된 밭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제주의 농촌마을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다른 지역을 여행하는 것보다 확연히 마음의 위안이 되고 사색할 기회를 더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뿐 아니라 제주의 밭에는 아무렇게나 제멋대로 자라는 멋진 나무들이 여기저기 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고 밭의 한가운데 무덤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이다.

늦가을의 들판에서 억새들이 바람에 따라 어서 오라고 혹은 조심히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계절은 늦가을이고 곧 겨울로 접어드는데 제주의 들판에는 아직도 색색의 꽃이 피어있고 나무와 풀이 푸르다.  마늘밭과 콜라비, 양배추와 여러 작물들이 아직도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바닷가에 도착하니 바람이 거세다.  몸무게 73Kg인 내가 배낭을 메고 걷는데도 바람때문에 휘청거린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와는 달리 걷는 사람도 낚시하는 사람도 없다.  오직 파도와 바람과 제주의 풍경과 나만  남은 느낌이다.  다행한 것은 바람은 세차게 불지만 비는 많이 내리지 않아서 가끔씩 작은 빗방울만 간간히 떨어진다.

해남 땅끝과 가장 가까운 관곶이라는 곳이다.  이곳의 돌담에 기대어 바람을 피할 겸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일정을 생각해본다.  내일 바람이 잦아들면 추자도로 들어갈 생각이다.  확실히 여행이나 걷기는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한다. 오늘은 출발도 늦었고 오후 4시까지 렌터카를 반납해야 한다.  아무리 계산해보아도 4시까지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별별 이유를 대면서 추가비용을 물리는 제주도 렌터카 업체들인데 늦게 반납하게 되면 무슨 요구를 할지 걱정이다.  

마음은 급하지만 저 늦가을의 죽어가는 풀들과 검은 돌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런 풍경이 나를 자주 제주로 오라고 유혹하고 나는 그 유혹에 여지없이 무너지곤 한다.

바람에 떠밀려 걷다가 이렇게 양쪽으로 돌담이 둘러싸인 곳을 지날 때면 마치 큰 보상을 받는 듯한 몸과 마음의 위안을 느낀다.  이렇게 아늑한 곳에서 잠시 쉬면서 담배를 한 대 피워본다.  계속 걸을 때는 느끼지 못하지만 잠시 쉬었다 일어서려면 배낭의 무게에 지친 어깨도, 발목과 무릎과 다리의 곳곳이 뻣뻣하고 아파서 금방 일어서지 못하고 손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그래도 조금 걸으면 또 괜찮다.

신흥포구를 지나는 곳에는 양식장이 있었다.  어떤 이의 블로그를 보니 이곳에서 고기들이 뛰어오르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해서 한참을 기다려보았지만 날이 춥고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조용하기만 했다.

 

길은 다시 바다를 떠나 마을로 향한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올레표시가 한참을 보이지 않으면 돌아와야 한다.  한참을 가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올레길을 이어간다.

신흥초등학교였던 자리가 이제는 다문화교육센터로 바뀌었다.  

 

바람이 거세니 모든 배들이 바람을 피해 내항에 정박해있었다.

점심 시간이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추웠고 뜨끈한 국물 생각이 간절했다.  이곳에 들어가 각재기국을 시켜서 소주 한 병 하기로 한다.  돈을 더 드릴테니 각재기국을 안주 삼아서 먹을 수 있도록 넉넉하게 해달라고 주문을 했더니 인심좋은 주인 아주머니가 푸짐하게 해주어서 잘 먹었다.  몸이 확 풀리는 느낌은 좋았는데 이후로 소주 한 병 때문에 고생을 했다.  걸음도 더뎌지고 몸은 늘어져서 한 두어시간 동안 고생스런 발걸음을 이어갔다.

예전에 집사람과 제주에 왔을 때 이곳 함덕해수욕장 근처의 오션그랜드호텔에 묵었을 때 이 식당에 들러서 뱅에돔회를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제주로 올 때 집사람이 스타벅스 쿠폰을 보내주면서 걷다가 커피라도 마시라고 했었는데 그동안 사용하지 않다가 오늘 사용해본다.  춥기도 하고 점심 반주 때문에 늘어지는 몸을 깨우려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옷해서 해수욕장 화장실 옆에 앉아서 마셨다.

길은 서우봉으로 이어진다.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 되어서 조금 힘들었다.

올레 표시는 7Km를 지나왔다고 써있었는데 내 시계로는 8.45Km로 나온다.  중간에 알바도 하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늘 정상 거리보다 2~3Km는 더 걷게 된다.

이런 숲길을 만나면 반갑다.  이런 길을 걸으면 나는 왠지 조금 더 차분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면서 사색적인 분위기에 잠기곤 한다.

 

서우봉을 내려오니 점잖게 생긴 개가 나를 반겨준다.  노령견인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요란떨지도 않고 점잖게 나를 대하는 느낌이다.  나도 잠시 앉아서 개를 쓰다듬어주면서 위안을 주고받았다.

낡고 헤진 간판이지만 그래도 한 때의 이름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달려있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존재감을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저절로 느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가죽공방을 하는 부부가 사는 집 같은데 바닷가에 멋지게 집을 잘 지어놓고 사는 것 같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 들어서 부쩍 강아지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이 놈들도 어찌나 나를 반겨주던지 돌아가라고 해도 계속해서 나를 따라온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랬는데 올레길을 걷다보면 개들이 잘 따라온다.  나는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한참을 따라오면 떼어놓기가 미안해진다.

다려도의 사진이 빠졌다.  마을 앞에 있는 작은 무인도인데 섬 안에 정자를 지어놓았었다.

이제 길은 다시 내륙쪽으로 향한다.

어떤 아저씨가 개를 데리고 길을 걷고 있다.  어제도 보았지만 이렇게 개를 데리고 올레길을 걷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동북리 마을운동장이라는데 누가 이렇게 외딴 곳에 운동을 하러올까 싶다.  

 

운동장 옆 정자에 올레 중간스템프가 있었다.  이 부부는 분당에서 왔다는데 나에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길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니 대단하단다.  아닌게 아니라 오늘은 길이 무척 길게 느껴진다.  조금후에 렌터카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조금 늦게 반납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하는데도 계속해서 꼭 제시간에 반납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내 차를 다음 시간에 예약한 사람이 와서 기다린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 말이지만 그 사람에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해달라고 했다.  이 전화를 받고는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마음이 급하니 이제는 경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빨리 걸을 뿐이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예전에 집사람이 제주에 와서 20코스를 걸었을 때의 출발지여서 예전 기억이 새로웠다.

마지막 종점 스템프를 찍고 바로 앞에 택시 사무실이 있어서 택시를 타고 조천으로 가서 차를 회수해서 렌터카사무실에 반납하고 집사람이 예약해준 동문시장 옆의 미소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짐을 두고 배가 고파서 동문시장에 가서 고등어,갈치,방어를 모듬회로 주문해서 술을 한 잔 하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잠을 잤다.  새벽에 깨어서 블로그를 정리하고 나니 아침 7시 30분이다.  제주항에 전화해서 추자도행 배가 운행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