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9년 11월 15일
새벽부터 시작한 15코스를 마치고 한림항으로 가서 차량을 회수하니 거의 12시 정도였다. 오전에 13Km를 걸었으니 오후에는 조금 짧은 구간을 걷기로 하고 21코스를 선택한 것이다. 한림항에서 21코스의 출발지인 구좌 해녀박물관을 네비로 찍어보니 거의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제주시내를 통과해야 하는 길이고 길이 밀릴지 모르니 목적지에 거의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계속 운전을 했다. 구좌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해녀박물관에 도착해보니 왠지 낯설지 않고 익숙한 곳이었다. 그럴 수밖에, 전에 집사람과 함께 걸었던 20코스의 종점이 이곳 해녀박물관이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운전을 해서그런지 아침에 삐끗했던 발목이 아프다. 조금 걸으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출발한다.
공원을 가로질러서 조금 지나니 연대동산으로 오른다. 제법 경사가 있는 길을 지날때면 발목과 무릎이 조금 아프다.
이 길은 숨비소리길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
조금 지나니 길은 마을로 이어지고 마을에는 제법 멋진 나무가 두 그루 서있었다.
21코스는 전형적인 중산간마을의 풍경을 많이 갖고 있었다.
저 앞에는 시원한 제주바다의 풍경이 있고 지금 나는 내가 좋아하는 돌담과 푸른 밭이 어우러진 제주의 시골길을 걷고 있다.
별방진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성이라는데 전쟁에 대비한 성이라는 느낌보다는 잘 쌓아놓은 건축물 같은 느낌이었다.
마을길을 지나는데 사진에서 보이듯 온통 검정색의 강아지 두 마리가 반겨준다. 어찌나 검은지 저렇게 그림자로만 보일 정도였다.
길을 가다보면 바다를 가로질러서 도로를 내놓은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양쪽에 바다가 있는 풍경을 보게 된다. 지금 사진은 안쪽의 풍경이다. 저렇게 작은 수로를 통해서 물이 왕래하게 된다.
전에 처음 제주올레를 걸을 때만 해도 바닷가 길을 걸을 때면 차도를 따라서 걸어야 해서 자동차때문에 깜짝 놀란 일도 있었다. 특히 3코스를 걸을 때 한여름의 더위에 치지고 25Km 정도를 걸어야 해서 지친 나머지 거의 눈을 감고 비몽사몽간에 걷다가 차소리에 깜짝 놀라곤 했었다. 그러나 이 길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인도가 넓고 차도와 다른 재질로 바닥을 깔아놓아서 졸면서 걸어도 차때문에 놀랄 일은 없을 것 같다.
석다원 앞에는 중간 스템프가 있었다.
도로 가에는 옛집을 리모델링 하든지 새로 짓든지 해서 민박과 카페로 쓰는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몇 년 사이에도 제주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이 건물들은 바닷가에 신축한 타운하우스 같은 것인데 아직도 분양이 다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바닷가에 정자가 있어서 잠시 쉬면서 바다풍경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바다는 다른 곳보다도 더 짙은 푸른색이었다.
토끼섬의 모습인데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섬이다. 문주란 자생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 볼 수는 없다.
아까부터 어떤 아가씨하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함께 진행했다. 차림새로 보면 올레길을 걷는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것 같았는데 햇볕에 타지 않도록 모자를 벗어 올려서 얼굴을 가리면서 걷기에 선크림이 없어서 그런가 하고 선크림을 빌려줄테니 바르라고 했더니 자기도 있고 지금 선크림을 바른 상태인데도 햇볕이 너무 강해서 가리는 것이라고 한다.
하루에 두 코스를 하려니 몸도 지치고 발목도 시큰거려서 이곳에서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누웠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길을 이어간다.
지치고 힘들어서 지미봉을 가지 않고 그냥 도로를 따라 간단히 끝낼까 고민했지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결정한 일인데 힘들다고 잘라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해서 지미봉으로 향한다.
지미봉 입구에서 처음으로 스틱을 꺼냈다. 발목과 무릎이 좋지 않아서 스틱을 사용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리 크지 않은 오르막인데도 너무 지쳐서인지 다 왔나 싶으면 또 오르고 하기를 반복하니 무척 힘들었다. 이제 이 평지길을 걸어면 마지막 짧은 오르막길만 가면 지미봉 정상일 것이다.
정상에 오르니 산불감시 초소가 있었고 이곳에서는 사방이 다 조망되는데 그 풍경이 참으로 멋졌다.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요근래 최고의 경험이 될 만큼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바다쪽으로 잘 보이고 뒤를 돌아서면 저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여러 오름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게다가 제주의 밭들은 또 얼마나 원색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늘어서 있던지. 그냥 해변길로 질러가지 않은 것을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진으로는 저 오름들 뒤에 있는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내 마음 속에는 참으로 멋진 장면으로 기억되어 있다.
지미봉에서 내려오는데 올라오던 젊은 커플을 만났다. 여자는 올라갔으면 하는데 남자가 올라가지 말고 그냥 내려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에게 나도 지쳐서 올라오지 않으려 했지만 막상 올라가 보니 여기까지 와서 지미봉을 올라가 보지 않으면 평생의 후회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결국 그 커플은 올라갔고 아마도 올라가서는 이름도 모르는 내게 고마운 마음을 갖을 것이다.
지미봉을 내려와서 길은 바닷길로 이어진다. 이제 2km 남짓 남았다. 해질녁의 제주 풍경이 내게 위안을 준다. 힘들었지만 오늘 나는 할 일을 다 했다. 의무감이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즐기듯이 오늘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발목과 무릎은 아프고 몸은 지쳤지만 내일이면 또 다른 길을 걸을 것이다.
드디어 종점에 도착했다. 스템프를 찍고 바로 오지 않는 택시를 어렵게 잡아타고 해녀박물관으로 가서 내 차를 회수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너무 힘들어서 사우나라도 하고 싶었지만 좋지 않은 발목을 뜨거운 물에 담그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16코스를 하고 그 다음 날에는 추자올레로 배를 타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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