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록

캠퍼와 혜련이의 첫 지리산종주 - 1

준형아빠 2024. 1. 25. 11:52

제가 등산을 시작한 것이 2000년 10월이니까 지금부터 10여년이 지난 일입니다.

언젠가 서점을 들렀다가 등산백과(?)인가 아무튼 약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저 자신도 왜 그 책을 골랐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평소 비싼 밥 먹고 어차피 내려올 산을 뭐하러 힘들게 올라가느냐며 등산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골리곤 하던 저였으니까요.

한 이틀 정도 그 책을 다 읽고나니 저 자신이 무슨 대단한 등반가나 된 듯한 착각이 들었나봅니다.

당시 둔산동 타임월드 근처에 라푸마 대리점이 새로 개업한지 하루 이틀 정도 된 날이었는데.

집사람을 데리고 그 가게에 가서 등산용품이라는 것을 장만했습니다.

제 평소의 모토인  '인생 뭐 있어?  어차피 한방이지'를 외치며 주인에게 부부가 등산을 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준비해달라고 했습니다.  전에 낚시를 할 때 경험한 일인데 장비를 어설프게 장만하면

어차피 더 좋은 것으로 자꾸 바꾸게 되더라구요.  해서 주인에게 산에 가서 "쪽 팔리지 않을 만큼"

준비해달라고 했습니다.  등산화, 고어자켓, 내피,기타 옷가지, 배낭, 버너, 코펠, 식기 등등등....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집사람의 표정을 무시하며 카드를 긁고 보니 한 삼백 몇십만원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 그 주인이 서비스라며 준 것이 지리산 지도였습니다.

앞 면은 등고선이 표시된 지도였고 뒷면에는 지리산의 사진들이 있었는데,

저는 연보라빛 박무가 얕게 깔린 첩첩산중의 산그리메가 있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 아 !" 하는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리산 종주는 저희 부부에게 로망 그 자체였습니다.

 

첫 산행을 영동 천태산을 다녀오고 너무 힘들었는지 그 뒤로 한동안 산에 가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다 큰 맘 먹고 산에 가자고 나서도 상대방이 먼저 포기하자는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며 서로 눈치만 보는 정도였으니

등산을 제대로 하기나 했겠습니까.

그러다 한토를 다니게 되었고 그나마 남들 따라다니다 보니까 제대로 정상도 밟아보고 산행의 즐거움도

조금씩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봤자 후미 전문요원이었습니다.

어쩌다가 박배낭을 매고 덕유산을 두 번 다녀오고 나니 왠지 꿈에 그리던 지리산종주를 해보고 싶더군요.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우리끼리 서로 격려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비실비실한 재미 ㅋㅋ님도 갔다왔다는데

우리가 왜 못하겠냐며.....

8월초에 대피소 예약을 하고 출발하려는 순간 입산금지 문자가 오는 바람에 첫 도전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좌절했습니다.  재차 도전.  드디어 8월 17일 세석대피소 예약에 성공해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서대전역에서 출발 보습2입니다.  이 때까지 기분 좋습니다.

기차를 기다리며 기념사진도 찍고 설레는 마음으로 지리산종주를 이야기했습니다.

구례구역으로 향하는 기차에는 등산을 가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거의 다 지리산에 종주를 하러 가는 사람들입니다.

구례구역에서 해장국을 먹고 택시를 타고 성삼재에 도착해서 등산을 시작한 시간이 4시 40분입니다.

노고단대피소의 취사장 모습입니다.

노고단 모형 앞에서 사진을 찍고 진행합니다.

하늘은 흐리고 바로 비라도 쏟아질 듯하지만 우리는 지리산종주를 한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열심히 걷습니다.

임걸령 가기 전부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데 미처 우의를 입기도 전에 팬티까지 물이 줄줄 흐릅니다..  어차피 다 젖은 상태이고 우의를 입으면 더 불편할 것 같아서 그냥 진행합니다.

피아골삼거리를 지나 삼도봉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번들번들해져서 황동이 드러난 삼도봉 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종주를 한다는 마음 때문인지 길 가의 여러 꽃들이 더 예뻐보이고 멋지게 보이더군요.

화개재에 도착하니 원추리꽃과 동자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토끼봉을 지나면서 물에 젖은 등산화와 양말때문에 발이 붓는 느낌이 들면서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이 때부터 발등과 발가락이 벗겨져서 따끔따끔합니다.  

태풍 무이파와 계속된 폭우로 등산로가 엉망이고 비에 젖은 발 때문에 늦어져서 오후 1시 30분에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서 이후 사진을 찍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계속 진행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등산로 사정과 기타의 이유로 세석을 예약한 사람들이 세석까지 가지 못하고 벽소령에서 머물기도 

했지만 우리는 세석까지 가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