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록

미완의 지리산종주

준형아빠 2023. 9. 22. 12:07

2019년 8월 15일 

 

그동안 지리산 종주를 여러번 했다.  나에게 있어서 지리산종주는 무언가 변하고 싶거나, 변화되었을 때의 변곡점이 되는 마디를 짓는 의식같은 것이었다.  가게를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헐값에 던지듯이 내놓고 바로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집사람과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고 대피소 예약을 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제대로 완결되지 않은 샹태였지만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가게를 직원들에게 맡겨두고 지리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늘 1박2일로 하다가 그동안 체력도 약해졌을 것이고 해서 천천히 여유를 갖고 산행하기로 하면서 연하천대피소와 로터리대피소를 예약하였다.  둘째날 대피소를 장터목으로 하고 싶었지만 장터목은 이미 예약이 완료되었기 때문데 둘째날 천왕봉까지 갔다와서 로터리대피소에서 휴식을 하고 하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항상 밤 기차를 타고 갔었는데 2박3일로 여유있게 가기때문에 아침 7시50분 기차편으로 출발한다.  아들이 제 차로 서대전역까지 배웅을 해주니 마음이 편하다.  함께 서대전역 앞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밝은 아침의 역사로 들어가니 새로운 모습이다.  날씨는 맑고 옆사 앞에 있는 베롱나무가 예쁘다.  

서대전역을 7시 49분에 출발한 기차가 10시 16분에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오자마나 성삼재로 가는 택시를 타고 10시 50분쯤에 성삼재에 도착했다.  

11시에 성삼재주차장을 출발해서 노고단 방향으로 향한다.  더운 날이지만 하늘은 청명하고 기분이 좋다.

30분 남짓 걸었을 뿐인데 벌써 온 몸에는 땀이 흘러 적시고 있다.  노고단 가는 길의 전망바위 근처에서 잠시 쉬면서 간식으로 빵을 먹고 다시 출발한다.

노고단대피소에서 노고단 올라가는 돌계단에 동자꽃, 이질풀, 모싯대가 예쁘다.

 

모싯대, 산수국이 반갑고 임걸령 가는 길은 전보다 더 좋아졌다.  전에는 꼭 태풍이 오거나 큰 비가 내린 후에 지리산 종주를 해서 그랬는지 지금보다 장애물도 많고 군데군데 파인 곳도 많았는데 이번에는 마치 사람이 정비를 해놓은 듯 길이 편하다.

오랜만에 오는 길이지만 길이 너무나 익숙하고 마치 며칠 전에 지났던 길을 다시 걷는 기분이 든다.

임걸령의 샘물은 여전히 차고 맛있었다.  시원하게 셋수도 하고 샘터 옆에서 준비해 간 볶음김치와 노고단에서 구입한 햇반으로 점심을 먹었다.  

길을 걷다보면 예전에 종주할 때 내가 쉬었던 곳들도 다 기억이 난다.  그 때는 65리터 배낭을 매고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40리터 배낭이라서 그다지 힘들지는 않는다.  하긴 나야 주중에도 자주 산행을 하고 가끔 긴 코스도 등산을 했었지만 집사람은 오랜만에 하는 종주길인데 힘이 들었을 것 같다.  그래도 투정 없이 잘 따라온다.  

 

노루목 삼거리에서 반야봉을 다녀올까 생각했지만 연하천대피소까지 6시까지 도착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 싶어서 그냥 진행한다.  

지리산종주를 할 때마다 꼭 사진을 찍게 되는 삼도봉 팻말이다.  

임걸령에서부터 만난 아가씨들에게 부탁해서 부부사진을 찍어보았다.  이 3명의 일행들은 28세 동갑 친구들이라는데 한 사람은 산행을 좋아해서 지리산종주에 나서게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산행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대피소에서 잠을 자보고 싶어서 따라왔고 나머지 한 사람은 얼떨결에 따라왔다고 한다.  그래도 평소에 자전거도 타고 마라톤도 해서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고 하더니 나중에 토끼봉에서 한참을 드러눞더니 연하천대피소에 아주 늦게 도착하게 된다.  

숲길은 좋아졌고 전보다 길가에 원추리가 유난히 더 많이 보인다.  따로 식재를 했는지 아니면 계절이 맞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 종주길에는 유난히 원추리꽃이 자주 보여서 반갑다.  

토끼봉을 지나면서 점점 힘이 든다.  그렇지만 나보다 더 힘이 들었을 집사람을 생각해서 힘을 냈던 것 같다.  게다가 오랜만에 보는 곳곳의 반가운 나무와 바위, 쉴 곳 등이 옛기억을 새롭게 해주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드디어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했다.  간단히 씻고 수건을 적셔서 몸을 닦았다.  전에는 대피소에서 술도 마시고 양치도 했었지만 지금은 술도 금지되었고 비누, 치약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간만에 지리산종주를 한다고 좋은 등심과 소주도 이틀치 분량으로 4병이나 싸왔는데 결국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재작년에 비나무님과 함께 지리산종주를 할 때 벽소령에서 1박을 하고 둘째날에는 천왕봉을 찍고 장터목에서 잠을 잤는데 비나무님이 유난히 코를 심하게 골아서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참다 참다가 새벽 1시쯤 자는 사람을 깨워서 야간산행으로 백무동으로 하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나는 대피소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을 자려고 눕기만 하면 옆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때문에 영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요즘 예민해진 것일까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 새도록 대피소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집사람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혜련이는 일찍 전화기를 진동으로 해놓고 잠을 잤기 때문에 통화를 하지 못했다.  밤새 왔다갔다 하다가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하는 어떤 여자분에게 집사람을 깨워달라고 부탁해서 새벽 일찍 연하천을 출발한다.  

연하천을 나와서 조금 진행하다가 어차피 오늘도 로터리대피소에서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고 밤새 잠도 못잔 상태에서 들쩨닐의 일정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서 음정마을로 탈출하기로 한다.

이른 아침이라 기온은 낮고 바람도 시원해서 기분이 좋다.  아침햇살이 낮게 깔려서 주변의 풍경에 입체감을 주면서 멋진 구경거리를 선사해준다. 

한참을 걸어서 음정마을에 도착했다.  택시를 불러서 함양터미널까지 가기로 한다.

함양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분이 지안재에 잠시 내려주면서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함양터미널에서 표를 사고 남는 시간동안 터미널 옆에 있는 식당에서 뼈해장국과 함께 소맥을 하니 시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전에 도착해서 내 차를 가지고 희리산자연휴양림에서 1박을 하기로 하고 출발했지만 휴양림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장항에 가서 오랜만에 온정집의 아구탕을 먹고 나니 집사람이 오늘도 잠을 못자면 어떡하나며 그냥 집에 가서 편하게 자자고 한다.  결국 텐트를 걷어서 대전으로 돌아왔다.  내가 가게를 하면서 몸이 전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몸 뿐만 아니라 정신도 예민해졌는지 이제는 대피소에서 잠을 자기는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차근차근 다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더 다져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