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4일 수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보니 오늘도 가을 장마의 영향인지 비가 내린다. 숙소 근처의 여기 저기에 벼락이 떨어지고 소리가 요란하다. 다른 코스를 갈까 고민하다가 일단 10코스 시작점인 화순 금모래해변으로 차를 몰고 갔다. 가는 내내 비가 쏟아져 와이퍼를 아무리 빨리 작동시켜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금모래해변에 도착해서 탐방안내소 앞에 있는 식당에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오늘 같은 날에 무슨 올레길을 하느냐며 만류한다. 결정을 하지 못하고 식당에서 해장국과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식당을 나서는데 잠간 비가 멎는게 아닌가. 이 때다 싶어서 얼른 시작 도장을 찍고 출발해본다.
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는 물놀이장을 지나자 바로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오르면 금모래해변이 내려다 보이면서 조망이 좋다.
고개 하나를 넘어가니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해변이 보인다. 조금 더 내려가니 썩든다리탕방로와 화순곶자왈탕방로로 갈리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정표도 하나는 떨어져 있어서 진행하는 방향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갈림길을 지나면서 올레표시를 보지 못한 것 같은데도 어차피 길이 한 쪽으로 진행되어 그냥 지나간다.
항망대에 올라서 바라보는 경치도 좋다. 10코스는 중간 중간에 높은 곳마다 전망대가 여러 곳에 있는데 모두 조망이 좋아서 어느 곳을 가도 감탄을 하면서 경치를 구경하게 된다.
용머리해안에 입장이 되지 않아서 그동안 올레표시를 보지 못한 것 같아서 매표소 직원에게 올레길이 맞느냐고 물었더니 올레길은 위쪽 큰 도로를 따라가야 한단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산방산쪽으로 올라가 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올레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 도로가의 카페로 들어가 올레길을 물으니 한 아가씨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해안가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며 다시 내려가라고 한다.
다시 해안쪽으로 내려와보니 올레표시가 있었다. 결국 한 30여분 이상 3kM정도 알바를 한 셈이다. 금모래해변을 출발할 때 멎었던 비는 한 30분 정도 지나면서 다시 시작되어 오후 5시까지 계속되었다. 카메라 렌즈를 수건으로 닦으면서 사진을 찍는데도 계속해서 화질이 좋지 않다. 오후에 확인한 결과 단지 렌즈표면에 맺힌 물방울 문제만이 아니라 카메라 자체 내부에서 습기가 계속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
비를 맞으면서 걷는데도 내 마음은 좋다. 경치도 좋지만 내 몸의 상태가 걸울수록 좋아지는 기분이다. 비가 와서 카메라도 젖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덥지 않아서 힘들지는 않았다.
비가 얼마나 억수같이 내리는지 바다로 황토물이 흘러가서 바다 빛깔도 탁하고 흐렸다.
송악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시간은 12시를 넘어가지만 배는 아직 고프지 않았다. 휴식을 취할 겸 카메라 상태도 점검할 겸해서 근처 식당에 들어가 해물라면과 막걸리 한 병을 시키고 카메라를 닦고 말려보기도 한다.
송악산 정상은 출입금지였지만 정규 탐방로를 따라가면서 보는 풍경도 훌륭했다.
비가 많이 내리니 관광객도 없고 승마체험을 하는 사람도 없다. 오직 말들만 비를 맞으면서 풀을 뜯고 있다.
송악산탐방로에는 전망대가 여러 곳에 있었는데 어느 곳을 가도 조망이 참 좋다. 아무더 없는 이 길을 나 혼자 전세놓고 즐기는 기분이다.
전망대에서 보니 어제 갔던 가파도가 코 앞에 있다. 가파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 해발 20여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는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과 가장 낮은 가파도가 함께 있는 곳이다.
송악산을 내려오니 길은 알뜨르비행장으로 향한다.
저 멀리 언덕 위에 아주머니 두 분이 서로 사진을 찍느라 만세를 부르고, 번쩍 뛰기도 하고 둘이 함께 모여서 셀카도 찍고 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오랜만에 제주까지 여행을 왔으니 그러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일제때의 고사포 진지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콘크리트 벽이며 기둥들이 아직도 단단하게 건재하고 있다. 일본놈들이 튼튼하게 짓기는 하는가보다.
섯알오름의 양민 학살터에 추모정이라는 정자도 지어져 있었고 추모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나는 여기 앉아서 카메라도 닦고 물기도 말렸다.
사진으로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내 눈으로 보니 들판의 여기 저기에 비행기 격납고가 있었다.
이 구조물은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다. 자세히 보면 옆에 계단이 있어서 올라가게 되어있는데 윗부분이 없어진 것인지 아무튼 용도를 알지는 못했지만 들판 한가운데 오랜 세월을 서있는 모습이 마치 무슨 의미가 있는 구조물로 느껴졌다.
이런 흙탕길을 걷느라 신발은 이미 진흙투성이고 발은 아침부터 젖어서 많이 불어난 느낌이었다.
다행히 비가 그치고 있다. 한쪽 하늘은 파랗게 개고 반대쪽은 아직도 어두둔 구름이 있다.
카메라에 습기가 너무 많이 차서 도저히 촬영이 되지 않는다. 오늘의 목적지까지는 1Km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해변 정자에 앉아 한참을 카메라도 말리고 배낭도 열어서 젖은 물건들을 말리면서 쉬었다.
결국 오늘의 종점인 모슬포에 도착했다. 10코스는 17.5Km의 거리에 소요시간도 4~5시간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나는 산방산 근처에서 알바도 하고 오면서 모슬포항을 구경하느라 22Km를 걸었다. 시간도 두 번정도 카메라와 짐을 말리느라 소비해서 7시간 30분이 걸렸다. 이번 10코스는 비를 흠뻑 맞으며 걸은 길이었지만 나는 너무 기분이 좋고 행복한 마음으로 걸었다. 화창한 날에 다시 한 번 걸어보고 싶은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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