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나는 숲이 좋다 제주올레 14-1코스

준형아빠 2024. 2. 7. 18:14

2019년  11월  13일

 

아침 일찍 일어나니 오늘 컨디션이 왠지 좋지 않았다.  오늘은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할까하고 아침 준비하기를 기다리면서 소로우의 월든을 읽었다.  다른 숙박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조명도 켜지 못하고 2층 식당의 테이블에서 책을 읽으려 했지만 전원을 어디서 켜야 하는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날이 밝기를 기다려 바다가 보이는 2층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월든은 다시 읽어도 참 좋은 책이다.   8시가 다 되어서 주인이 나오더니 일을 하기 싫은지 나가서 해장국을 먹자 한다.  한림항 근처의 선원들을 상대로 하는 백반집에서 밥을 먹는데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14코스와  14-1 코스 중 어디로 갈까 하다가 오늘 컨디션도 좋지 않아서 14-1코스로 가기로 하고 저지리에서 출발한 시간이 10시 정도 되었다.

 

시작부터 올레표시를 찾지 못해서 알바를 하고 다시 돌아와보니 전주옆의 간판에 표시가 달려있어서 방향을 잡고 출발한다.  오늘도 역시 왼쪽 고관절 부분이 좋지 않다.  한참 가다보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진행한다.

제주의 여러곳에서 목격한 사실이지만 이곳에서는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이 나오면 그 돌을 잘 쎃아놓고 보관하다가 벽을 만들기도 하고 대문을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았다.  

동백꽃이 반갑다.

아침에 시작할 때는 온통 구름으로 가득찬 하늘이 서서히 구름이 걷히는 것 같다.  

동백의 일종인지는 몰라도 분홍빛 꽃이 참 예뻐보였다.

오늘 코스는 내륙의 오름들을 바라보면서 진행한다.

수고가 40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은 작은 귤나무에 제 몸통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귤을 달고 있는 모습이 기특해보였다

 

어제 갔던 저지오름이 아름다운 숲 대상을 수상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는데 오늘의 곶자왈은 그것보다도 더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여기서부터는 삼나무 숲이 길게 이어진다.  새들이 지저귀고 바람도 심하지 않아서 기분 좋게 걸어간다.

나무들과 그 나무들을 타고 오르는 또 다른 나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명성목장이라는 말목장인데 파란 풀밭이 인상적이었다.  이 밭에는 말 뿐만 아니라 말을 돌보는 개도 몇 마리 뛰어다녔고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꿩들이 말 옆에서 뛰고 날곤 한다.

이제 문도지오름을 올라가는데 길에 온통 말똥 천지다.  하긴 말들이 제 배설물들을 치우지 않으니 그럴수밖에.

오름에 올라보니 사방으로 제주의 오름들과 넓은 숲의 조망이 좋다.  바다쪽은 멀어서 바다의 풍경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은 새끼를 배었는지 배가 불룩하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예민하게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이제 길은 기분좋은 황토길이다.  황토의 질이 얼마나 좋은지 붉은 빛이 아주 선명하다.

이곳에서 올레 중간 스템프를 찍는다.

올레재단은 비영리 단체여서 지자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후원으로 운영을 한다고 한다.  나도 이렇게 좋은 길을 걷기만 할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후원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제주에도 가을이 깊어간다.

 

이 곶자왈부터 나는 오늘 최고의 기쁨을 느꼈다.  어둡지만 건강한 숲과  그곳의 멋진 나무들, 서로 생존을 위해서 경쟁하는 건강한 숲의 모습에서 경외감까지 느꼈다.

이렇게 나무를 감고 자라는 또 다른 나무들이 있었고, 그렇게 휘감긴 나무는 여지없이 시들어간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감고 올라가는 줄기 같은 나무를 잘라놓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저 식물의 이름이 궁금했다.  곳곳에 여지없이 나무들을 타고 끝까지 올라가는데 게중에 어떤 놈은 밑둥이 어지간한 나무만큼 굵다.  기존의 좋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중간을 잘라놓았겠지만 나는 올히려 저 놈들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이 철망 앞의 올레표시를 보지 못하고 넓은 길로 진행하다가 알바를 했다.  다시 돌아와보니 철망 앞에 잘 보이도록 리본을 여러개 매달아 놓았는데 내가 왜 보지 못했을까?

나무를 타고 오르는 저 식물의 이름을 모르겠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신기하다.  줄기도 없고 어떻게 나무를 타고 번식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이 때 너무나 행복한 마음으로 산책하고 있었다.  적당히 어둡고 여러가지 나무들이 어우러진 이 숲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새들이 지저귀고 바람도 잔잔한 이 조용한 숲이 주는 느낌은 마치 명상을 하는 듯한 기분까지 들게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매일 자주 이런 숲에 들어서서 새소리를 벗삼아 계절별로 새롭게 변화하는 숲의 다양한 모습들을 관찰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 어두움, 이 교요함, 그 곳에서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을 객체로서 냉철하게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두운 숲이 끝나가고 밝은 곳으로 나왔어도 이 숲은 좋았다.  

 

숲이 끝나간다는 신호와 같은 문을 보면서 나는 이 숲이 조금더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  올레길을 걷다보면 힘들고 지칠 때면 길이 얼른 끝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숲은 아니었다.  정말로 나는 이 숲이 조금만 더 길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오설록에 도착했다.  반듯한 녹차밭의 풍경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나는 너무나 좋았던 숲이 끝났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올레스템프를 찍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이 의자에 앉아서 오늘 지나온 숲길에 대해서 되개김을 해보았다.  

유명한 관광지인 오설록이고 이곳의 녹차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나는 마지막 숲길에 대한 여운이 너무 남아서 맛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설록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저지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내 차를 회수해서 한경읍에 가서 목욕을 하고 어제 숙소에서  수면바지를 분실한 것이 생각나서 수면바지를 하나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걸었던 14-1코스는 짧았지만 여운이 남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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